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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8일 목요일




독일 생태공동체와 한국의 생태마을 만들기에 나타난 예술문화 활용과 인문학적


사유에 관한 연구





전선자*






1. 머리말


2. 독일 생태공동체와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의 예술문화 활용 비교


2.1. 독일 생태공동체의 <연대감 조성에 관한 10가지 지침>과 예술문화 활용


2.2.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의 예술문화 활용


2.3.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에 있어서 필수조건: 인문학적 소양을 위한 교육


3. 맺음말














• 국문초록



국내에서 요즘 한국사회의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한 사업으로서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를 통해 지역사회 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리고 주체의식이 뚜렷한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이제는 개발과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실생활문화 영유와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사회문화를 절실히 원하고 또 창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와 소망이 이제까지 보아왔던 것처럼 정부나 기관이나 기업체가 내놓는 정략적인 정책이나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변화, 즉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발전계획을 세워 진행 중인 ‘마을 만들기’ 사업은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즉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민 주도형’ 마을사업을 추진하려 노력하면서, 주민의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의 결과를 마을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마을 주도형’ 사업방식으로 목표를 확대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모든 마을에서 주체의 ‘역량확대’가 필요하다. 이것은 지도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 ‘전체’를 위한 것이다. 이런 역량확대는 다양한 교육적인 측면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역생활문화를 활성화한 고유문화 아이템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문화 활용’에 관한 지식과 그 운영시스템, 그리고 이를 위해 평생교육 차원의 ‘인문학적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래야만 그들의 삶과 예술문화가 산업사회 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면집단(對面集團)’의 문화 안에서 성숙될 수 있다.



• 주제어


예술문화 활용, 생태적인 마을, 생태적 합리성, 대면집단, 인문학 교육, 힘과 무력.




1. 머리말



세계문화의 지평에서 볼 때 생태적인 인식에서 출발한 예술문화 활용은 동서양이 서로의 영향 관계 없이도 이미 자생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급속한 산업화로 외향적인 수입문화 확산으로 해체되어 가는 고유문화와 기술 의존에만 따르는 삶의 양식에 대한 우려, 그리고 기계론적 자연관에 입각한 근대주의적 사고에 대한 비판 등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가치관과 세계관을 ‘생태적인 생활문화’와 ‘순수자연관’에 기초하도록 이끌고 있다. 이제 생태적인 생활실천의식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또 더 확실한 인식확산을 위해 사회적 유대관계 속에서 생태적인 예술문화 활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동안 생태적인 인식과 실천이 빈약해, 생태적인 예술문화 활용은 도시보다는 작은 마을 단위의 공동체 내에서, 또 작은 자치단체 내에서 초보적인 단계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주로 고령화된 농촌 주민의 사회적 소외감과 빈곤화, 이에 따른 배타적 증오와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서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다행히 2004/5년부터 정부의 ‘마을 만들기’ 추진사업 등에서 ‘생태적인’ 지역 만들기가 최종적인 목표로 추진되면서, 이에 대한 담론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나 실천은 아직 묘연한 상태에 있다. 반면 독일에서는 90년대부터 이미 주민 스스로에 의해 생태적 가치에 기반을 둔 인식과 실천이 전원 속에서, 또 도시생활 속에서도 공동체를 형성해 지속적으로 생활화하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생태 예술문화를 활용하여 그들 공동체의 일체감과 자긍심을 심어 주는 동시에 지역사회 내에서도 공익적인 보편성에 기여하고 또 그들의 실험이 정부환경정책에도 영향을 주는 등 사회문화적으로 생태적 연대감 조성과 실천을 유도하는 생활예술문화로 변천해 왔다.


국내에서도 요즘 (정부에서 이미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한국사회의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한 사업으로서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를 통해 지역사회 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자치단체의 사람들이 그동안 막연했던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실생활에서 체득한 경험과 지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생태적으로 올바르게 다뤄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동시에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이제는 어떤 특정 이념이나 인물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며, 이 다양한 구성원들이 주체가 되어 자립적으로 자신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더 주시해야 하는 것은, 주체의식이 뚜렷한 많은 현대인들은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이제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일변도에서 벗어나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실생활문화 영유와 이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사회문화를 절실히 원하고 또 창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문화와 정신문화에 대한 소망이 이제까지 보아왔던 것처럼 정부나 기관이나 기업체가 내놓는 정략적인 정책이나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변화, 즉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각성은 이미 그 전부터 활동해 오던 종교․시민단체가 이끄는 지역생태공동체가 지역단위의 생태환경개선운동과 감시, 그리고 자체의 문화사업 추진과정에서 체험한 실패와 성찰과 반성, 그리고 재도전을 통해 얻어 낸 것들 중 하나이다. 이를 토대로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라는 사업 속에서 전통적인 정신문화와 예술문화의 활용이 한창 진행 중이다. 마을발전계획을 세우며 진행 중인 이런 사업들은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가며,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민 주도형’ 마을사업을 추진하려 노력하면서, 주민의 협동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의 결과를 마을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마을 주도형’ 사업방식으로 목표를 확대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들의 동기와 지향은 지극히 인문학적인 성찰과 사유, 그리고 실존적 자의식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마을지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예술문화 활용에 관한 내용(contents)은 신지식이나 세계적인 경영방식에 걸맞은 문화항목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산업사회 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면집단(對面集團)’의 문화 속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즉, 몇백 년 동안 이어온 실생활이자 현재도 주민과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누리고 있는 그 지역의 고유문화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런 ‘예술문화 활용’은 그 지역에서 실현되고 있고 누리고 있는 예술문화가치를 주민 스스로 발굴하고, 그리고 마을공동체 안에서 만족과 자긍심을 느끼는 자율 활동으로서 주민 스스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생태계 보존에 관한 관심과 실천이 문화요소 속에 전제되어야 한다. 또 마을지도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생기는 타 지역과 차별화된 문화항목을 개발하도록 이끌어, 주민 스스로에게는 정체성 확립과 자존심을 갖게 해 주며 외부인에게는 문화적 볼거리로 제공될 수 있는 마을주민의 문화경제 활동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 상황과 문제의식 속에서 본 연구논문은 ‘독일 생태공동체’에 관한 선행연구와 연계해 독일 생태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치적인 참여와 열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생태공동체의 지킴이격인 <연대감 조성에 관한 10가지 지침(10 Thesen zur Gemeinschaftsbildung)>을 로버트 E. 파크(Robert Ezra Park, 1864-1944)의 ‘인간생태학(Human Ecology)’에 관한 이론에 따라 분석하고, 그 실천으로서 그들의 예술문화 활동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 후 이를 통해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 사례에 나타난 예술문화 활용에서 마을공동체 주민들의 자치 참여와 연대감 조성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성찰적 사고능력’과 ‘비판적 사고능력’, 즉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므로 그 필요성에 대해 논할 것이다. 국내에서 비교적 성공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전남 무안군의 <월선리 예술인 촌>(1990년부터)과 그동안 생태공동체로 널리 알려진 전남 장성군의 <한마음공동체>(1986년부터)와 강원 평창군의 <성필립보 생태마을>(2000설립), 그리고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을 기획추진하고 있는 춘천시 북사면 부귀리의 <생기마을>(1998년부터)을 현장조사와 설문조사를 토대로 고찰하였다. 이 마을들의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의 토색적 생태의식을 근본으로 갖고 있으며 현재의 생태계에 관한 문제의식도 갖고 있었다. 또한 예술문화 활용의 가치와 목표, 그리고 역할뿐 아니라 ‘살기 좋은 생태마을 만들기’의 방향과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도 인지하고 있었다.




2. 독일 생태공동체와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의 예술문화 활용 비교



2.1. 독일 생태공동체의 <연대감 조성에 관한 10가지 지침>과 예술문화 활용



2004년 공식적인 통계집계에 의하면 독일 내에는 144곳의 생태공동체가 존재한다. 이 공동체들은 대부분 인위적인 ‘대면집단’이다.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구성원들은 대면집단이 갖는 공동체 기능을 살리려 한다. 그리고 각각의 공동체에는 특성화된 가치와 목표가 있음에도 상위 규범으로 기능하는 공동 마인드가 있다. 이를 위해 독일 생태공동체들은 그들 삶의 가치차원에서 세계적인 네트워크(GEN, Global Ecovillage Network)를 형성해 공동체발전을 위한 세미나와 실험을 해마다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생태적이고 인문학적인 성찰과 사유를 끊임없이 해 오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형태의 미래사회가 그저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능한 것임을 그들의 연구 결과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연대감 조성에 관한 10가지 지침>은 생태공동체 정신의 근본이 무엇인지 또 공동체의 목표와 기능을 위해 어떻게 공동체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공동체 가치이념에 준해서 설정해 놓은 것이다. 이 지침들은 독일 공동체프로젝트(Die deutschen Gemeinschaftsprojekte, “Come Together”)와 GEN조직과 그 외 생태공동체의 여러 협동과정(1993- 1999)을 거쳐 한 공동체 구성원인 디터 할바흐(Dieter Halbach)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이 10가지 지침 속에는 그들의 ‘생태적인 공동체 만들기’의 핵심사상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이 지침들은 공동체 생활 속에서 ‘협력’을 통한 새로운 정신문화를 창출할 수 있도록 공동체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각성시키는 역할도 한다. 이를 세세히 살펴보면,






표보기










첫 번째, ‘연대감(Verbundenheit)’이다. 공동체는 단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또 그 그룹에 속해 있다고 해서 공동체라고 정의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과 타인의 생활과 함께 연대감을 갖는 정신적인 자세 바로 그 자체를 말한다. 공동체는 언제나 자신의 내면적인 일과 개방에 의해서 새로이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두 번째, ‘구속력 또는 책임감(Verbindlichkeit)’이다. 공동체가 갖는 근본적인 목표와 가치에 대해 표현하자면, 그것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현시적으로 그들의 창조력과 창의력이 ‘협력’ 속에서 사용될 수 있게끔 기여하는 것이다. 어떤 약속이든 명확한, 즉 책임지는 약속은 여러 삶의 계획을 좌절시키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한다. 공동의 목표 내에서 또 책임감을 갖는 구속력과 개인적인 방식 안에서 ‘연대감’은 서로를 요구하고 또 상호 지원한다.


세 번째,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Eigene Beteiligung)’이다. 공동체는 내가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 또 내가 내 모든 인격과 함께 확실하게 예(Yes) 그리고 정확하게 아니오(No)를 두려워하지 않고 표명할 때만 성립될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렇게 행하지 않는 한, 공동체와 그 결속은 ‘타인’에 대해 텅 빈 연출로 남는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자신이 ‘주연’ 배우가 되기 위해서 맨 뒷줄에 혹평가로 초대받아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네 번째, ‘개성(Individualität)’이다. 공동체는 개성적인 사람들을 제한하거나 또는 상위 그룹의 정체성에 동화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 아니다. 생태적인 마을공동체는 그 구성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의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그런 기대에서 성립된 것이다.


다섯 번째, ‘다양함 속에서 일치(Einheit in der Vielfalt)’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다양하고 강하다면, 공동체는 다각적인 관계의 그물망에 의해서 저항력이 더 강해지고 또 더 활기차고 생생해진다. 동식물의 생활공간에서처럼 공동체의 정신과 참뜻은 서로 간의 보충과 협동이다.


여섯 번째, ‘정신적인 연대감 조성(Innere Gemeinschaftsbildung)’이다. ‘다양함 속에서 일치’를 외적으로 인지하는 능력은 자기 자신을 다양한 본질로서 내면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바로 ‘나는 여러 본질을 갖는다’라는 인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협력해야 하는 그룹에 대한 이견이나 소위 종종 다툼으로 갈라진 그리고 분열된 내면적인 입장의 이해와 통일은 공동체 외부의 경쟁자들과 함께하는 개방된 환경에 대한 전제조건이다. 부동적(완고)이고 융통성이 없는 자기 계획은 공동체의 연대감에 방해가 된다. 개방적인 자기 자신에 대한 계획은 전체 조직 속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받아들이고 또 서로를 보충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다(Wir sind eins)”라는 것이 존재하게 된다.


일곱 번째, ‘실험적인 사회형태(Experimentelle Gesellschafts- gestaltung)’이다. 공동체는 모든 구성원이 ‘하나’가 된 상태 안에서 자신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임을 보여준다. 공동의 대화에서 인간적으로 모순이 없는 또 객관적이고 공평 타탕한 새로운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삶의 어느 분야도 또 느낌의 어느 부분도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내밀한 인간적인 문제들은 개인적인 구속에서 내면적인 문제의 해결가능성을 찾기 위해서는 또 감정의 해침(모욕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자각된 상태에서 깨끗이 치유하는 빛(힘)이 필요하다.


여덟 번째, ‘상호 간의 신뢰구축(Vertrauensbildung)’이다. 세상을 타인의 입장에서 또는 열린 마음에서 보고, 그리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비우는 능력은 신뢰와 동정을 느끼기 위한 토대가 된다. 공동체는 신뢰할 수 있도록 정직하고 또 매도하지 않는 의사소통과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 서로 다름 속에서 그 다른 것에 목적을 두고 누가 그 형상과 가능성을 갖기를 원한다면,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그 문제에 대해 편협하고도 불필요한 것에 정성을 쏟는 일이 된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이에는 서로 다름이 넓게 있음을 인정하고 또 넓은 시야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인지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홉 번째, ‘구상과 기획 그리고 실망(Projektion und Enttäuschung)’이다. 공동체에 대한 동경은 공동체의 연대를 현실화시키는 능력을 갖추는 관계와 과정에서 종종 정반대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대신, 또는 허점을 채우는 대신, 공동체는 오히려 구성원 자신에 대한 거울이며 또 자신의 발전에 대한 도전이 됨을 알아야 한다. 누가 <우리>를 찾으며, 그는 <자신>을 찾을 것이며, 반대로 <자신>을 발견하려 하면, 그는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열 번째, ‘고향(Heimat)’이다. 먼저 내가 공동체 안에서 가식이나 꾸밈없이 또 순응하는 것 없이 바로 나 자신 그 자체로 머물 수 있다면, 나는 공동체 안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각된 편입이 내면으로부터 일어난다면 또 각 공동체구성원이 자신을 스스로를 개방하고 그 세계 속에서 공감을 얻는다면, 위의 지침들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생길 것이라고 독일의 생태공동체 사람들은 말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에서보다 협동 안에서 또 상호 간의 연대감 안에서 더 자연스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각은 설립시기부터 자발적으로 동참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성찰적인 사유에서 출발하였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자유와 공적 질서 사이에서 ‘자기 통제’를 하며 ‘중도의 길’ 바로 ‘중용’을 취할 수 있도록 세상을 사유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성찰적 사고능력과 비판적 사고, 그리고 스스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 또는 힘(power)’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생태학’에서 말하는 사회 구성의 기초인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와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의 상호행위를 유동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본 로버트 파크는 인간사회의 속성을 두 가지 측면으로 보았다. 첫째는 인간본성에 대한 표현으로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하며, 경쟁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전적으로 공리적인 것이 된다. 둘째는 개인의 자유는 최고의 가치이지만 합의와 공동 목적의 표현으로서 개인은 다른 면에서 사회의 집합적 이성에 종속된다. 그래서 파크는 전자를 공동체(community)라 하고 후자를 사회(social)라 불렀다. 그러나 동식물의 공동체와는 달리 인간 공동체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파크는 인간 공동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시설물의 지리학적 배분이라는 견지에서 이루어진 사회 또는 사회집단’이라고 하였다. 이는 바로 왜 생태공동체의 가치가 근본적인 측면에서 생태에 대한 각성과 복원, 그리고 유지에 관한 임무와 권리를 다하고 있는지를 대변해 준다. 즉, 생태계의 일부인 인간의 온전한 심신의 유지는 모든 지역문화와 문명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또한 인간 사회는 생물적인 측면(생명체인 몸)과 함께 ‘의사소통과 공감대에 기인한’ 문화적인 것으로 조직된다. 바로 인간 공동체는 일차적으로 어떤 지역에 관한 개인(individual)들의 분배이지만, 그 다음 나타나는 인간사회는 공동생활을 하기 위한 사회인(person)의 조직체이다. 그래서 파크는 통합적 시각에서 인간 공동체의 인자(因子)를 관습, 종교, 문화, 제작물로 크게 나누었다. 이같이 인간은 생물적 균형과 사회적 평형을 동시에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균형과 평형이 깨지는 과정이 하나의 (안정된) 질서에서 다른 질서로 전이되는 것이며, 이 변화과정의 연구가 인간생태학의 근본이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거의 모든 연구의 관심사가 ‘경쟁의 자연적 결과로 본 공동체’에 관한 것이어서 그 공동체의 문화적 요소를 소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이제 독일 생태공동체 구성원들은 ‘공생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지역사회의 구조 속에서 (관습과 법 등을 만드는 상호행위인) ‘사회적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사회의 구조를 스스로 연구하고 이를 생태공동체들의 실제적인 생활로서 실천에 옮기고 있다. 20세기 말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생물적 균형과 사회적 평형의 전이 과정의 삶을 ‘실험적인 한 사회형태’로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베를린 남쪽 근교에 위치한 생태공동체 <젝(ZEGG)>의 본래 명칭인 “실험적인 사회형태를 위한 센터(Zentrum fuer Experimentelle GesellschaftsGestaltung)”에서 이를 반영한다. 비록 공생적 하부구조(symbiotic substructure)에서는 생태계 순환구조에 의존하나 문화적 상부구조(cultural superstructure)에서는 좀 더 민감하고 승화된 형태, 즉 성찰적인 사고와 자율적인 예술문화 활동 등으로 더 높은 사회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이런 상호관계는 너무 다양하고 다각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파크에 의하면 사회규범은 생태학적 규범에 기초를 두고 있으나, 그 정점에 도덕적 규범이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위계질서를 갖는다고 한다. 즉, 인간사회는 “통제조직”의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바로 이 <10가지 지침>이 독일 생태공동체의 도덕적 규범으로서 또 삶의 목표와 의미를 함축해 놓은 가이드라인으로서 정점에서 통제의 기준이 되어 주는 이유이다. 그럼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개인들의 에너지를 모으고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회적 기능은 이 지침에 의해 원활하게 작용하게 된다. 즉 공동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율적인 역할분담과 다양한 그룹 활동 속에서 예술문화 프로그램들이 올바른 인지와 실천으로서,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며, 몰입과 명상 그리고 영성으로 구성원들에게 책임감과 신뢰를 구축하게 한다. 이것이 곧 ‘일상에 품위를 주는 생활습관으로 남게 된다’(Bill Nickl)는 것이다. 이렇게 인문학적 소양에 기인한 이 <지침>은 결국 서로 간의 경쟁을 제한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해 주며, 그럼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질서 사이의 중도화(中道化)(중용)’를 꾀할 수 있도록 독일 생태공동체의 ‘저력(power)’으로 작용하며, 유기적 단위의 다양한 그룹 활동들 간의 효과적인 협동을 유도하고 있다.



독일 생태공동체 사람들은 이런 연대감을 마을공동체 안에서 또 사회문화적인 운동 안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발전 안에서도 역시 인지한다고 한다. 이렇듯 <연대감 조성에 관한 10가지 지침>은 그들의 삶과 문화를 형성해 주는 핵심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정신적 문화 활동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는데도 통제 기준이 되어 주는데, 즉 그들은 인간과 지구가 거대한 우주의 한 부분임을 인지하며, 한 생명체로서 생태계 내의 모든 존재와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자연의 주기적인 순환을 따르는 가운데 산업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배척되어 온 전통적인 의식과 축제에서도 즐거움과 소속감을 느끼려 한다. 또 창조적인 예술표현에 있어서도 우리와 결속된 우주의 일치를 표명하며, 전 지구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또 영성적인 시야를 넓혀 영성적인 표현을 갖는 모든 형태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들의 이런 ‘통합적’ 실천은 ‘행동하는 삶(vita activa)’으로서 표출되는데, 예술문화 활동이 이런 실천의 가장 보편적인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어떤 예술문화 활용이, 어떤 범위 안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행연구에서 이미 논의된 독일 구동독지역에 설립된 여러 생태공동체 가운데 네 곳을 선정해 비교할 것이다. 이 네 생태공동체의 예술문화 활용과 활용범위와 주제를 도표로 만들어 보면,









선행연구에서 이미 밝혔듯이 독일뿐 아니라 모든 세계의 생태공동체문화는 생태적으로 상생하는 새로운 인류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자발적으로 생태공동체에 입주한 의식화된 공동체 구성원들의 실천은 각 공동체의 특성화된 분야의 문화가 활용되고 있음을 <표 1>을 통해 알아 볼 수 있다. 이런 특성화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동체들에게는 이윤추구란 없으며 모든 것이 ‘자급자족체제’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경제이변이나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어떠한 경제적 쇼크가 일어난다 해도 그들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회복지 상황도 국가가 마련한 기본 틀을 수용하고, 부족한 것은 스스로 공동체 내에서 해결한다. 아직까지 물질적인 부족으로 불편과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모든 세부 예술문화영역이 상생하는 생태문화를 위해 추진된다. ‘일상’과 직접적으로 접목된 이 예술문화는 지금도 ‘실험적인 통합문화 활용’으로서 의지적으로 실행되고 있으며, 또한 인간중심적이 아닌 생태중심적인 가치관과 생태학적 자연미학 속에서 예술문화 활용이 공동체생활의 성찰적 기회가 되도록 ‘생태영성적인 자각’을 돕는다. 이런 자각이 ‘정신적 연대감’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하고, 또한 이런 내부적인 결속은 대면집단이 갖는 생활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구성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2.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의 예술문화 활용



공동체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생태공동체가 설립된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국내의 사정은 거의 낙후된 농촌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마을 만들기 운동’에 유기농산물의 높은 부가가치가 소득을 증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인식하면서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농산물 수입개방과 이제는 FTA협정 등으로 밀려드는 저렴한 외국산 농산물에 대처할 방법은 안전한 먹을거리인 ‘유기농산물’이며, 이로써 우리 생태계에 대한 자각을 심화시켰고, 주민 스스로도 서서히 <생태적인 마을>을 마을개발계획의 목표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누가 지금 국내에 완벽한 ‘생태공동체’가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없다’ 이다. 그러나 비록 국내의 생태인식과 실천은 아주 미흡한 단계에 있지만, 생태적인 의식과 공동체적인 자의식이 있는 ‘마을 지도자들’에 의해 희망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마을지도자들은 “사회가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Joseph Beuys) 끊임없이 변화를 하듯이, 마을도 사람도 지역의 생태환경도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과 함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늘 변화를 맞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또 자신의 지역이 (쓰레기 매립 등으로) 생태적으로 훼손 된다면 마을이든 사람이든 생태적인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기획에서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는 자연히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런 지도자가 있는 마을들도 그간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또 행정편의주의와 토호세력을 견제하면서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생태마을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해 왔다. 그러나 모든 주민의 의식이 지도자의 생각과 함께 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태이다. 즉, 마을지도자의 생각과 마을주민의 생각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다. 그래서 마을지도자들은 우선 지역의 고유한 생활문화에서 특성을 찾아, 그것을 마을의 예술문화항목으로 개발해 자율적인 예술문화 활동으로 장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예술문화 활용은 마을공동체 주민들에게는 자긍심과 정체성을 심어 줄 수 있으며, 또 이런 문화아이템은 어느 정도의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문화상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외부에 마을에 대한 홍보와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예술문화 활동 속에서 활동주체의 의지와 지향이 자율적인 행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역시 주민의 자율적인 의지와 실천이다. 이런 의식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이제까지 농민으로만 살아왔다. 그들에게는 지금 인식의 전환을 위한 사고능력이 먼저 요구된다. 즉, 이것은 ‘비판적 사고와 성찰적 사고능력’을 길러 줄 지속적인 교육이다. 그래서 다음의 도표에 열거한 네 마을들은 이런 문제를 깨닫고 변화에 힘쓰고 있는 경우와, 이런 상황에서 서서히 이탈되어 가고 있는 경우와, 또 생태의식변화와 실천을 위해 교육으로 힘을 쏟고 있는 경우와, 그리고 문화생활이 전혀 없고 외지고 야생동식물만 있는 지역에서 생활의학으로 돌파구를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이다. 그들의 생태마을 공동체의 지향이 예술문화 활용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다음의 <표 2>로 알아보겠다.


표 2: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의 예술문화 활용




<월선리 예술인촌>과 <성필립보 생태마을>은 두 가지 지향점에서 뚜렷하게 생태적인 예술문화와 교육을 활용한다. 첫째, 전통적인 것이든 과학·기술적인 것이든 활용하고 있는 예술문화 프로그램의 가치가 ‘일상생활 안’에서 활성화되어 공동체 주민의 일상문화로 귀착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생태의식과 실천의 확산은 보장되며 또 ‘지속가능한’ 문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둘째로, 예술문화 활용과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이 (외부인들에게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부적으로 마을공동체 주민의 생태실천과 신뢰구축, 그리고 상호협력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공동체의 ‘정신적 연대감’을 구축하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는 주민의 ‘주체의식’이 먼저 요구되고 자율적 행동이 동반돼야 한다. 그래서 마을 지도자들은 정신적 연대감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 교육은 직업훈련이나 직업연수가 아니다. 이 교육은 주민의 의식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달리 말하면,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인문학적 성찰과 사유’로 시작하는 <클레멘트 코스>의 교육은 자신에게 자긍심을 느끼게 만든다. 이런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이 ‘마을 만들기’에서 필요하며, 이와 함께 기획된 예술문화 프로그램은 ‘생태마을 만들기 사업’ 목적에서 이탈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필립보 생태마을>에서는 마을지도자의 의지에 의해서 1-2월에는 <정신적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3월부터 12월까지는 유기농업 작업과 생태문화교육이 실행된다. 2005년부터 <월선리 예술인촌>의 예술인들은 자발적으로 폐교 직전의 청계남초등학교에 예술체험교육을 활성화 시켜 변화를 주었다. 그 후 이 학교는 떠나고 싶지 않은 학교가 되었고, 이 마을 <월선리>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을이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2005년 이전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바로 배타적이기만 한 주민의 의식을 이타적 배려로 또 소외된 주민들(노인들)의 무관심을 자치적 참여로 유도하기 위한 마을 공동기획으로 진행되어 온 예술문화 프로그램들이다. 이것은 <태양제>(1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쥐불놀이>(2월), <무안분청 문화제>와 <고향의 봄 축제>(5월), <신처사 전조제>(6월)와 마을주민의 <전시회> 등으로서 그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자치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 주민 서로가 ‘보완’하고 ‘협력’하는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유도하였다. 그 과정 속에서 월선리 마을은 마을을 이끌어갈 그룹(청년회, 부녀회, 노인회, 예술인)의 리더들을 (자생력 있는 주체세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주민들 내에서 주민이 뽑았으며, 또 ‘마을 만들기’ 과정의 운영도 모든 주민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마을 만들기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는 마을의 자치적인 조직이 사회의 조직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기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 마을의 지도자들은 주민 의식변화를 위해 (단숨에 달려가지 않고) 시간을 갖고 마을공동체조직을 키워가고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에 반해, <한마음공동체>는 80/90년대의 끈끈했던 공동체 의식은 소멸된 듯 마을공동체 내의 60가구가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 지금은 지도자인 남상도 목사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만이 공동체의 이슈가 되어 지도자 의지와 추진력에 의해 마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는 천연염색과 천적사육 등의 체험학습과 유기농산물 생산에서 이제는 황토로 짓는 생태건축에 몰입해 있다. 그러나 마을 주민의 집을 황토 집으로 바꾼 경우는 없었다. 그렇다고 생태건축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주민에게 교육하고 장려하지도 않았다. 또 마을의 주 사업도 농업에서 유통업으로 그 중심이 옮겨 갔다. 농촌주민의 젊은 층이 이 유통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에 의한 예술문화 활동도 유통업 비전에 준해 존재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북사면 부귀리의 <생기마을>은 ‘면’에 초등학교 하나밖에 없고 찻집(茶房)조차 존재하지 않는 외진 산골에서 자생적인 생활문화 창출 차원으로 ‘생활의학’이 정성헌 촌장의 이념과 이상으로 욕심 없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다. 인제군과 DMZ의 생태문제와 그 곳의 생활문화 향상에도 고심하는 정촌장의 의지는 첩첩산중에만 피는 야생약초 개발과 심신단련 프로그램의 활용에서부터 <한국DMZ평화생명동산> 프로젝트까지 모두 완결하고자 노력하나,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맞춰 그는 성급함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2.3.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에 있어서 필수조건: 인문학적 소양을 위한 교육



‘마을 만들기’는 말 그대로 마을을 만드는 것이며, 우리 농촌의 특성상 기존의 마을에 생태적이며 사회문화적이며 자급자족보다는 약간의 경제적 효과를 주는 ‘내용과 방법’을 수용하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 속에는 하드웨어적인 것과 소프트웨어적인 것이 공존하는데, 전자는 택지조성과 경관조성 그리고 기반시설 구축 등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며, 후자는 주민들, 공동체, 직업, 종교, 취미, 교육, 관습, 전통, 과학기술 등을 공유한 유동적인 사회적 관계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하드웨어적인 것과 소프트웨어적인 의미를 시대정신 속에서 통합할 때, 마을 만들기는 생태환경개선과 보존, 공동체의식 고취, 전통문화 보존, 대안문화 형성 등을 요구하고 또 스스로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주민이 스스로 해결해 내야 하는 것이다. 즉 주체가 시민단체나 연구기관이나(전문가 주도형) 또 행정기관이나 공무원(행정주도형)이 아니라 ‘마을주민이나 마을조직 또는 마을지도자(주민주도형)’이어야 한다. 혹 마을의 특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절충식 주체의 참여가 있을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해 낼 수 있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하고 그리고 주민의 자구적(自救的) 노력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 가장 견실(堅實)하다. 그래서 <월선리 예술인 촌>의 김문호 촌장은 “마을 만들기는 사업이나 성과 만들기가 아니라 ‘사람 만들기’다”라고 말한다. 즉 현대 산업사회에서처럼 게임법칙에 의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며 보완해 주고 협력하는 관계로 성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크의 말처럼 마을공동체는 “유기체”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월선리>의 마을 만들기는 <예술인 촌>과 함께 좋은 예가 된다. 즉 김문호 촌장과 마을 지도자들은 현재 마을공동체가 ‘대면집단’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사람과 조직’ 사이의 관계, ‘조직과 조직’ 간의 사회적 유대관계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관계 등이 기본적으로 소멸되어 있다고 본다. 이 관계를 다시 소생시키는 일이 마을 만들기에서는 제일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대립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마을 만들기’로서 ‘마을주민은 곧 주체’이고 ‘주민은 곧 사람’이다. 고로 ‘주체 만들기’는 바로 ‘사람 만들기’라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 생태공동체가 삶의 가치와 목표를 위해 설정한 가이드라인인 <연대감 조성을 위한 10가지 지침>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연구하며 실험하고 또 개발하는, 즉 ‘행동하는 삶(vita activa)’으로 살고 있기에 이런 지침의 필요성을 느끼고 스스로 작성하였다. 이처럼 월선리 마을에서도 12년 간 <예술인 촌>을 이끌어 온 김문호 촌장이 ‘마을 만들기 위원회(2003)’와 ‘월선리 청년회(1994)’를 결성하도록 도와 자생적인 조직으로 육성하게 하고, 스스로 주체의식을 갖고 마을운영의 기술을 익히도록 유도해 왔다. 이것도 바로 마을공동체 주민들의 갈등과 대립을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며, 이를 육성할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생태(Ecology)의 어원 오이코스(oikos 그리스어)의 의미인 ‘집, 가족, 경제’를 마을 공동체 내에 활성화시키길 고심했던 <성필립보 생태마을>의 대표 황창연 신부의 목표도 이와 유사하다. 안전한 먹을거리 확산과 생태계 복원 과 보존 차원에서 지역 주민과 단계적으로 유기농산물 재배를 유도하며, 생태-환경보호의 자발적인 실천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주제로 순회 교육과 환경 센터 교육을 병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인간생태학 자연생태학 사회생태학이 통합된 ‘평화생태학적 교육’을 통해 진정한 ‘생태마을공동체’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필립보 생태마을>의 설립 취지 역시 교회공동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평화생태학적 마인드를 갖는 ‘연대감’에서 비롯되었다. 즉 ‘우리는 하나다’라는 ‘정신적인 연대감’에서 나오는 ‘힘 또는 동력(power)’을 모든 사회인이 갖게 하는 것이다. 그는 교우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해 교회가 먼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생태교육의 장’으로 답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모범적인’ 마을의 생활생태예술문화 활용은 주민이 그들의 예술문화실천과정 속에서 서로를 보충해 주고 협동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마을 만들기’에서 다음 단계의 과제이자 목표가 될 것이다. 그것이 해결된다면, 주민들이 스스로 서로에게 바람직한 변화를 도모하고 또 사회를 변화시켜 주기를 마을 지도자들은 기대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숙고하면서, 국내의 생태마을 만들기에서 예술문화 활용이 독일 생태공동체의 <연대감 조성을 위한 10가지 지침>에 준거하여 간과해서는 안 되는 요소들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예술문화 활동 추진과정에서 마을주민 내에 소외되거나 배제된 계층이 없어야 한다. 소외감과 불신감으로 서로가 불만을 갖는다면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예술문화 활용에서는 이런 것의 해소를 위해서 처음부터 ‘모두 동참하고 모두 함께하여’ 책임 있는 구속력으로 ‘연대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둘째, 마을 만들기는 마을의 일이므로 모든 예술문화 활동의 계획과 형식은 마을주민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또 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그리고 모든 것이 언제나 투명해야 한다.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독일 생태공동체와는 달리, 국내의 마을 만들기에서는 약간의 이윤창출이라도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해 주민들이 소망하는 것이므로 철저한 공개원칙으로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막아야 한다.


셋째, 마을의 일은 곧 주민의 일이어야 한다. 그 마을의 문제는 공무원이나 외부인이 아니라 그 마을주민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주민에 의한 해결이 이루어지도록 자생적인 조직이 결성되어 (그런 조직으로서 ‘마을 만들기 위원회’같은 것이 있다) 일을 추진한다면, 문제의 핵심은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예술문화 활용은 주민생활의 고민을 해결하는 일과 연계 되어 있어야 한다.


넷째, 자생조직이 주체가 되어도 모든 논의는 ‘공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상부조직과 하부조직의 대표들 모두가 참여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공동체 내의 사회적 그물망이 다각적으로 형성되어 ‘살아 있는’ 조직이 된다. 예술문화 활동은 그런 그물망에 의해 ‘유동적으로 진화해야 매력적인 것’이 된다.


다섯째, 독일 생태공동체 <젝>에서 실행하고 있는 “비전시기”처럼 마을공동체의 모든 일을, 즉 한 해 동안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기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기간은 성찰(정신적 활동)의 기회로서 가능한 외부와 소통을 끊고, 모든 활동과 조직 간의 관계 등을 다룬다. 열린 마음으로 공동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투명성, 신뢰, 협력, 타자에 대한 배려, 생태와 생명에 대한 인식 등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모두 함께 짚어 볼 수 있다. 또 주민 간의 대립이나 예술문화 활동에서 빚어진 마찰은 이러한 대화 속에서 서로에게 변화를 줄 수 있다. 이때 내부의 흐름이 바람직한 방향에서 이탈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변화는 대면집단이 갖는 ‘자정작용’으로 공동체의 문제해결을 돕고,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주민들의 사고력도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여섯째, 많은 사람들은 마을 만들기에 무조건 희망을 걸고 있다. 아마 마을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친근감, 유대감, 안정감, 심지어는 선(善)까지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생활환경에서 친근한 것을 표현할 때 ‘마을’(마을 村)이라는 말을 편하게 두루 사용해 왔다(한옥마을, 서래마을, 생태마을, 영어마을, 마을버스, 효자촌, 기자촌 등). 그러나 이런 마을들은 우리 관념 속에서 ‘이상적’으로 설정해 놓은 하나의 상(像)일뿐이다. 그러므로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에서는 이런 기존의 관점과 선입견을 바꾸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문기관에서나 행정기관에서도 마을공동체에서나 어디에서도 ‘마을 만들기’에 관한 관점이 제대로 성립되어 있지 않다. 설사 마을 만들기에 관한 기존의 관점이 틀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낭만적인’ 관점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간과하지 않으려는 각성은 독일 생태공동체에서나 한국의 생태마을의 지도자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한국의 마을지도자들은 여러 번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경력이 있다. 그런 그들의 주체적 역량을 보면 공통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인문학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 자연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자연을 관조하기 시작한 이래로 줄곧 세상 사람들의 성찰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 준 근본적인 원천으로 기능해 왔다”라고 말한다. 인문학은 이렇게 성찰적 사고와 정신적인 삶에 입문하는 입구가 되어 준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배제하지 않고 마을 만들기에 동참했을 때 ‘생태마을 만들기’의 모든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이런 문제의 해결은 주민의 ‘정신적인 삶’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이다. 정신적인 삶은 스스로 행동할 수 있을 때 가능한데, ‘행동하는 삶’은 바로 ‘성찰적 사고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지속적인 고령화로 빈곤과 사회적 소외감과 배타적 증오의 한 복판에 있던 농촌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거기서 벗어나 자치적인 참여를 하고, 협력을 해서 자긍심을 느끼고 또 연대감을 조성할 수 있겠는가? 마을주민들이 독일의 생태공동체 구성원처럼 자율적인 행동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숙고하고 개인의 자유와 공적 질서 사이에서 중용을 지키는, 그런 일이 갑자기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제까지 그들에게는 대화의 창구와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소외감에서 오는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은 성찰적 사고보다 언제나 앞섰다. 그런 농촌주민들에게 어떻게 성찰적 사고능력을 길러줄 것인가가 바로 다음 단계의 과제이자 목표이다. 마을 만들기에서 모든 문제의 해결 실마리는 마을주민의 성찰적 사고능력에 달려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를 위해 ‘인문학적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신적으로 ‘자기제어’를 할 수 있는 이런 역량확대는 직업훈련과 같은 기술 교육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교양수업을 받고 토론하는 데서 길러진다. 이것은 단지 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먼저 그런 교육의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주민주도형’ 마을 만들기에서 예술문화와 그 외 모든 활용은 주체의 정신적인 삶 없이는 언제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맺음말



국내의 ‘살기 좋은 생태마을 만들기’는 도시보다는 지방 농촌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농촌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농촌주민의 예민한 내면적인 민감성을 고려해야 함을 전제한다. 또 농촌사회는 외부집단에 배타적이고, 외부를 견제해야 할 때는 내부적으로는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은 시간에 쫒기는 도시생활과는 달리 자연생태계의 순환과 흐름에 자연적으로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농촌주민들과 함께 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은 성과에 매달려 조급하게 추진할 일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시간을 갖고 성실히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이를 <생기마을>의 정성헌 촌장은 “혁명하는 마음”으로 행할 것이 아니라, “쉬는 마음(성찰하는 마음상태로)”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한국의 ‘마을 만들기’는 초보단계에 있다.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듯이, 비록 지금은 낮은 단계라 해도 천천히 목표에 정확히 다가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목표는 ‘5년 내에 억대 연봉’과 같은 허황된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현실적이며 지속가능한 것으로서 독일의 생태공동체처럼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완전한 ‘자급자족’ 형태를 지향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윤창출에 목표를 두다 보면 ‘시장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에 희생이 될 우려가 있으며, 산업사회가 갖는 모든 폐단이 ‘마을 만들기’ 속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이윤추구는 여러 인간적 불신을 낳으므로 제일 먼저 견제해야 한다. 그래서 마을사업에서 생기는 조그마한 이윤이라도 마을의 공동재산으로 귀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보면, <예술문화 활용>은 이윤 추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령화된 농촌사회를 생태적으로 또 사회문화적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자 ‘정신적인 연대감’과 ‘협력’으로 건강해진 농촌사회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한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속가능성’의 능력을 지금 마을주민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무 무리이다. 독일 생태공동체에서 보여준 <10가지 지침> 작성에서처럼 자율적인 공동체구성원을 지금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마을지도자의 성찰적 사고를 보안하고 협력할 수 있을 만큼은 ‘생태마을 만들기’의 목표와 가치로 설정할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이 자기계발과 책임 있는 주체 역할을 하게 하는 입구가 되므로, 주민의 역량강화에서 제일 먼저 필요한 일은 그들에게 ‘인문학적 교양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교양교육의 내용은 한국적인 전통사상이든 서양의 철학적 문학적 예술사적 또는 종교적 사상이든 상관은 없지만 꼭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인문학 강좌가 개발되는 것이 무난하다.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처럼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이 한국 농촌에서도 개설된다면, 이 교육이 빈곤과 소외에서 벗어나 자율적 삶을 살 수 있게 하리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또 김문호촌장이 “마을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와 같다고 말한 것은 바로 마을 만들기가 ‘자식 기르는 것처럼 인내를 갖고 시간을 갖고 지켜보며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되며, 이런 일을 바로 ‘인문학 교육’이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마을 만들기’ 사례는 제 각각의 스타일과 특징을 갖고 있다. 각 마을의 예술문화 활동은 그 마을의 고유한 특성과 양식을 장점으로 살려야 한다. 그래서 천편일률적인 ‘새마을운동’의 경우와는 달리, 각각의 ‘마을 만들기’ 계획과 구상은 그 지역의 특성과 생태적 자연문화를 고려해야 한다. 바로 부귀리 <생기마을>이 그 지역에 맞는 ‘맞춤형 실존적 생활양식’을 찾아가고 있듯이 말이다. 이러한 생활양식에는 질적으로 높고 낮음이 없으며, 다만 ‘다양성’이 있을 뿐이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듯이’(요셉 보이스) 또 ‘모든 것이 예술품이 될 수 있듯이’(아서 단토), 거의 모든 마을주민들이 자율적인 주체가 되어 준다는 전제 아래, 그들이 실행하는 예술문화 활용은 그들의 생활문화로서 전통과 현대 감각이 융합된 생생한 ‘통합문화’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또 국외의 다양한 예술문화 활용의 사례가 오늘날에는 네트워크화(GEN) 되어 있어 모범적인 경우를 연구 분석하여 ‘그 마을만이 가질 수 있는’ 문화로 창안해 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을공동체의 예술문화 활용은 농촌사회가 변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예술문화 활용은 아무리 낙후된 지역이라도 ‘살기 좋은’ 그리고 ‘평화’가 있는 생태마을이 되는 데에 중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은 오직 주체인 마을주민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인문학적 교육’의 제공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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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www.eurotopia.de



A Study on Art Culture Application and humane Thinking in German Ecological Community and Korean Ecological Village



Cheon Seon Ja



The nation has searched for a feasibility in the community through 'creation of ecological village' as a project to newly design the future of Korean society. Many modern people with definite subjective awareness, earnestly try to find out or create a social culture where they can break way from complete devotion called develop and growth, and feel common possession and hope of diverse actual life culture to give life vitality. And they perceive that such culture and wish is not achieved by any political policy or institution brought up by a government, agency or enterprise, but accompanied by a change of each member creating, namely, 'upward' change. 'Ecological villages projects' under way by the development plan of a village have induced 'voluntary' participation of residents, made effort to push ahead with 'resident initiated-type' village project for the residents, by the residents, expanding its goal to 'village initiated-type' all the village community takes responsibility for the project results. However, to realize it, all villages need the 'competence expansion' of all subjects, which is for leaders as well as entire local residents. Such competence expansion and solidification should be sought in a diverse aspect. Of them, it urgently requires knowledge on 'Art culture Application' to turning local life culture to peculiar cultural item, its operation system, and life-long level 'humane Education'. Only so the life and Art Culture of residents should be mature in the culture of 'face-to-face group'.







Key words:Application of Art Culture, ecological village, ecological rationality, 'face-to-face group', Education in the Humanities, power and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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