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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0일 수요일

성공적인 공동체를 위한 조건들


성공적인 공동체를 위한 조건들

가.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세우기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기대심리를 가지고 온 사람들에 의해 공동체가 깨질 우려가 있다. 사람들이 모이고 나서 노선갈등에 시달리기 전에 미리 비젼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컨대 생태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그렇다. 이에 대한 분명한 동의가 없이 들어왔다가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나. 토지문제에 대한 법적 소유권의 확인

한국처럼 땅값이 급등하는 조건에서는 토지문제의 소유권을 확실해 두어야 한다. 공동체라고 느슨하게 해두었다가 나중에 분란을 일으켜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계획공동체의 경우 토지는 대체로 공동소유로 하고 회원들에게는 점유권만 주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개인 소유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부동산매매가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 권한과 책임, 재정에 대한 협약

협약을 명확하게 하려면 성숙함과 상호존중과 영적이 고결함이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경우 공동체의 생활에 대해 반드시 새 멤버들과 충분히 상의를 한 다음 약정서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룹 내에서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종종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초기부터 멤버들이 서로 기대를 달리 하고 있던 것을 알게 된다. 처음부터 의논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권한과 책임과 재정이다.

라. 공동체적 의식의 개발

의식(ritual)은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절대로 필요하다. 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상징적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공동체는 교유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공동체라면 개인적 기도나 집단적 활동 또는 회합 전후에 함께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공동체 의식을 개발해야 한다.

핀드혼공동체의 튜닝(tuning)이 좋은 예이다. 공동체에 특별한 기념일, 24절기, 경축일 등을 기념하면서 이러한 의식을 활용하면 공동체가 힘든 시간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에너지가 형성된다.

마. 회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및 프로그램 개발

공동체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지도자나 간사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회원들의 역량강화이다. 영어로 이것을 empowerment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회원들의 지식과 능력을 강화하여 자기 삶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적한 교육프로그램과 이것을 잘 지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개발과 지도자 훈련 역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뜻있는 개인과 단체들이 중지를 모아 공동체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널리 보급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현 단계 공동체운동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프로그램은 갈등해결과 영성개발에 관한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만으로 이 중대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절대로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공동체가 깨지는 가장 큰 원인은 회원들 간의 갈등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했거나 영성 개발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국내의 몇몇 종교단체에서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구조가 폐쇄적이고 종파적이라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바. 생태디자인 및 생태적 집짓기

한국의 생태공동체 건설자들은 성격이 너무 급하다. 성격이 다 급한 것은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을 시작하고는 단기간에 실적을 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일단 급한대로” 하면서 생태주의 원칙을 무시하고 손쉽게 모양을 갖추는데 급급하다.

생활공간과 주변 환경을 생태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단기간에 결정될 일이 아니다. 장소의 생태적 특성을 알려면 최소한 네 계절 정도는 몸으로 겪어 보아야 무엇이 무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몇 아례 둘러보고 외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삼아 바로 기계를 들이대고 공사를 하거나 땅을 일구기 시작한다.

땅은 한 번 파면 다시는 회복하기 어렵다. 긴 호흡을 가지고 땅과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에 확신이 서면 삽이든 기계든 들이대야 한다. 대화의 기간은 자신의 생태적 구상(하수 및 쓰레기 처리 문제, 물 관리, 에너지 문제, 토지이용계획, 주변 식생에 대한 영향력 평가, 기계사용의 문제 등)을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치밀한 준비와 적응기간이 없어 바로 일을 시작하면 의도와는 다르게 반생태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집짓기 역시 시간과 경제를 이유로 간편한 조립식 주택을 지어놓고 5년, 10년을 그냥 보내기도 한다. 어떤 이는 심지어 문 밖에만 나오면 다 자연인데 굳이 집에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할 말이 없어진다. 집은 영혼의 쉼터이다.
건강한 생태영성을 가지고 싶다면 집짓기에 함부로 편리주의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생태공동체에서는 최소한 자신이 집짓기에 직접 참여할 것과 생태적 디자인 및 생태적 재료사용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사. 대안기술의 개발과 보급

생태공동체에서 대안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테크놀로지와 생활양식은 함께 가는 것이다. 기술은 주류 사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생활양식만 대안적으로 하는 것은 진정한 대안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공동체에서는 현실적인 여건을 이유로 대안기술과 대안에너지의 사용을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맡겨두고 있는 설정이다. 기껏해야 흙집 몇 채 지어놓고 시범용으로 풍력발전기 한두 대 세워놓는 것이 고작이다. 현재 수준으로 보아 이런 정도도 아주 ‘대안적’이랄 수 있을 만큼 국내의 상황은 열악하다. 무엇보다도 대안기술과 관련된 연구소와 사업체, 정부의 지원정책이 너무도 빈약하다. 거의 모두를 개인의 능력과 자본으로 해결하자니 생존에 급급한 공동체들이 먼 훗날로 미루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제 고유가 시대를 맞이하여 정부와 기업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안기술과 대안에너지 분야에 투자할 때도 되었다. 그리고 각 공동체들은 사회여건의 변화와는 별도로 열악한 상황에서나마 자기 나름대로의 대안기술 개발과 보급에 힘써야 한다.

그러한 기술들을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 자체가 대안적 삶이요 운동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역의 공동체들이 해당 지역의 토착(전통)기술들을 적극적으로 발굴 계승하는 것도 중요한 일거리 가운데 하나임을 명심해야 한다. 토착기술은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지역고유의 기술이면서 대안기술이 추구하는 인간적 척도(human scale)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아.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구조

농사로 100% 자급자족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비현실적이다. 농업을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수입구조를 만들고 그와 동시에 생산물과 자원을 화폐 없이도 교류할 수 있는 교환시스템(예컨대 LET System)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다양한 기능과 취향의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비즈니스 자체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관념이다. 비즈니스 즉 상행위는 원시시대 이래 인간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행위 가운데 하나이다. 또 상업을 통해서만 유무상통이 가능한 영역이 있다.

생태공동체는 창의적인 소규모 그린비즈니스(Green Business)를 개척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수익이 나면서도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해야 하니까. 게다가 일을 통해 참여자의 영성을 풍부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니까. 생태적 내지 영성적 관심이 없이 오로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섣불리 사업을 벌였다가 공동체가 회사로 변해버린 경우가 많다.

설사 주의를 하고 일을 벌이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자본의 논리에 빠져 정체성이 의심스러워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공동체 경제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거의 틀림없이 돈 문제를 가지고 갈등이 야기된다.

자. 제도와 법률의 개선

생태공동체운동은 말 그대로 바람직한 미래를 현실로 살자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현재의 법과 제도에 부딪치는 부분들이 있다. 가령 농촌마을의 한 공동체가 소득증대를 위해 자체 가공시설을 갖고 싶어도 까다로운 법규와 절차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지역에서 나는 자원과 기술을 이용하여 생태건축을 하고 싶어도 도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건축법규에 어긋나기 때문에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토지와 건축에 대한 법률과 조례가 귀농자나 도시농업자들에게 유리하게 개선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밖에도 미처 법률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많은 영역들이 대안운동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이를 시정하고 개선해나가는 운동이 시급하다. 법과 제도의 개선은 한 개인이나 단체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므로 이 역시 기존 NGO 및 사회단체들과의 연대와 네트워크 운동을 통해 사횢거 압력을 가해야 한다.

차. 공동체 지원 시스템의 강화

여느 운동도 그러하지만 공동체 운동은 특히 다양한 관계망의 형성이 중요하다. 공동체적 세계관 자체가 이 세상을 관계를 무한중층 구조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의 공동체는 다양한 관계망 가운데 하나의 결절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주위에 끊임없이 관심과 지원을 보내줄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각종 공동체 관련 컨설팅 기관, 기금후원 기관, 자원봉사 인력을 알선하는 조직, 공공기관과의 협력을 조정하는 기관, 공동체 관련 인력양성 기고나, 프로그램 개발 연구소 등이 있다.

카. 지역성의 강화

공동체 운동이 대안이 도리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성 때문이다. 우리는 조선 왕조 건국 이래 600년이 넘도록 철저한 중앙집권적인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지방 또는 지역의 역사가 한번도 제대로 쓰여 본 적이 없다. 지역은 중앙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 또는 중앙정부를 위한 과세지일 뿐이었다.

근세이후 태동한 사회적 저항과 운동도 거의 대부분 중앙에 대한 도전이었다. 공동체 운동에 이르러 처음으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운동이 꽃피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공동체 운동의 생명은 여하히 지역성을 담보하느냐에 있다. 설령 중앙이 몰락하더라도 자기완결 구조를 가진 지역의 공동체는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앙이 강하면 지방이 약해지고, 중앙이 약하면 지방이 강해지는 경향을 보여 왔지만, 우리의 경우 중앙이 약해지더라도 지방의 강화를 용납하지 않는 뿌리 깊은 중앙집권 의식으로 인해 지역에서의 민란과 반역이 끊이지 않았다. 공동체 운동은 민란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서 또 그렇기 때문에 중앙의 견제를 받지 않는 지역강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공동체 운동은 기존 사회운동의 관성 때문인지 아니면 중앙을 통한 영향력 확대 욕심에서 인지 지역에서 성공을 거둬 중앙으로 진출하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유통을 중시하는 생협운동과 농촌의 생산자 협동조합이 그런 경우이다. 대부분의 경제적 부가 서울과 그 언저리에 몰려있다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가져온 부가 지방을 강화하는 측면보다 서울에 대한 종속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 문제이다.

힘들더라도 애초부터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유통 순환체계를 모색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중심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대안 교육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는 땅값이 싼 지방에 있되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전국의 도시에서 온 중산층 자녀들이다. 지역출신 학생이 자기 지역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학생들은 지역과의 구체적인 연고나성이 없이 학업을 마치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 중앙이 지배하는 기존 질서에 편입된다.

교과 내용이 다르다고 해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다른 패러다임의 사회를 원한다면 운동의 전개과정과 실천에 있어서도 다른 패러다임이 적용되어야 한다. 현실을 이유로 자꾸 중앙의 논리와 타협하다 보면 대안운동은 결국 주류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보조적 운동에 머물고 만다.
지역에 대한 봉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타. 지역 연대와 네트워크의 강화


지경에서 출발한 공동체 운동이 현실을 이유로 자꾸 중앙을 기웃거리는 것은 황폐한 지역 인프라 때문이다. 지역에서 인력을 수급하고 지역에서 순환하는 유통구조를 만들려면 연대와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아서 그렇지 잘 들여다보면 쓸만한 자원과 사람들이 꽤 많이 남아있다. 이를 추슬러서 네트워크화 하고 다양한 연대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것조차 남아있지 않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심정으로 다른 지역이나 중앙의 원조를 얻어서라도 지역 인프라를 강화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계획공동체의 경우 지역에 틀어박혀서는 일체 외부와 단절한 채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경향이 눈에 띄기도 한다. 공동체의 발전 단계상 어느 정도 그런 고립적 발전의 기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경향으로 굳어져서는 곤란하다. 공동체가 대안으로서 기능하려면 전체 사회와의 부단한 교류 속에서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을 혼자서 극복하기보다 다른 공동체나 지역NGO들과의 연대와 교류 속에서 극복해 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고 바람직하다.

파. 국제 연대의 강화

연대와 네크워크의 강화는 지역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도 강화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은 세계적 네트워크에서 온다. 흔히들 세계화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화를 강조하지만 그런 일면적인 대응으로는 국제자본의 다면적인 압력에 견뎌낼 수 가 없다.
지역화는 세계화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전일론적 시각에서 볼 때 지역공동체의 일원은 곧 세계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무슨 국제 행사가 열리면 우르르 몰려나가 구경이나 하고 오는 국제활동은 생태공동체운동의 확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국제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국제연대를 통한 빈번한 교류와 협력은 국내 공동체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공동체운동의 세계적 확산을 촉진한다. 개별 공동체로서는 언어문제 등 여러 가지 장애가 있으므로 이를 위해 전국 차원의 공동체 연대가 결성되어야 할 것이다.



4. 생태공동체운동의 발전전망

세계적으로 볼 때 생태공동체운동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서구의 경우 계획공동체의 숫자가 완만한 속도이지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다만 지금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화되는 주기여서 공동체들 내부에 개인주의적 요소가 강조되고 개별경제의 고동체적 연대 형태가 많이 모색되고 있다.

예컨대 완전한 무소유 공동체나 공산주의적 공동체에는 새로운 세대의 형성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 대신 다양한 형태의 연대와 네트워크가 곳곳에서 형성 되고 있다. 여기에는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공동체의 활성화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무시한 채 원칙에 입각하여 무리하게 유토피아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것은 실패하기 쉽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근대화의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생태공동체 운동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급속한 세계화는 우리에게 단계론적 발전을 고집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미처 과거를 정리할 틈도 없이 모든 것이 혼재도니 채 오로지 자본과 시장이 이끄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 현실에 휩쓸려서도 또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다행히 우리의 생태공동체운동은 비록 그 걸음이 느리기는 하지만 열악한 조건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진전을 이루고 있다.

주요 도시마다 귀농학교가 있고, 생협이 조직되어 있으며, 대안학교도 어느덧 그 숫자가 150여를 헤아리고 있다. 그리고 민간주도 내지는 민관 합작의 생태마을이 전국에서 시도되고 있다. 토지문제와 생존의 어려움 때문에 계획공동체의 숫자는 크게 늘고 있지 않지만 많은 종교단체와 개인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 그 밖에 기공이나 명상, 예술, 전통, 치유 등 특정 분야의 사람들이 체체, 성미산주민공동체, 물만골공동체, 생태육아공동체처럼 그 성격과 지향이 다른 다양한 모습의 공동체가 속속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의 생태공동체운동은 대단히 희망적이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우리 국민들은 애향의식과 귀소본능이 유별나다는 것이다. 이 특이한 정서가 공동체운동과 잘 결합이 된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특히 지난 40년 간 지속적으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된 결과 지금 농촌은 텅 비어있는 상태이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 생태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날로 줄어드는 농촌인구를 상쇄하기 위해 귀농자들을 끌어들이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란 점도 긍
정적인 요소이다.

두 번째로 인구집중으로 말미암아 도시환경이 더욱 규격화되고 비인간적으로 변모함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 생태적 각성과 함께 인간적 규모의 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귀농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도시 자체를 생태공동체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 번째로 기존의 사회운동이 변화도니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함에 따라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한 숫자가 생태공동체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사회운동은 적대적 대항관계를 통하여 발전하여 왔지만 생태공동체운동은 상생관계를 통해 사회의 어떠한 부분도 소외되는 일이 없이 사회 전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십여 년간 이루어진 성과를 보면 실로 다양한 문야와 지역에서 생태공동체운동이 벌어졌는데 이는 운동의 시너지 효과와 지속가능성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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